기독교가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이 것은 삶의 방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돈이 목표이고, 돈을 해결하는 것이 삶의 방식이라면
기독교는 하나님께 순종함이 목표이고 하나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삶의 방식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우리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것을 명하는 것은 너의 좋게 됨을 위해서 명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합니다.
(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Dt 10:13.)
( and to keep the LORD’S commandments and His statutes which I am commanding you today for your good? )
그 율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메달리라는 것입니다.
You shall fear the LORD your God; you shall serve Him, and cling to Him, and you shall swear by His name.
Dt 10:20.
그리고 수 많은 성도들이 수 많은 경험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의지하면 결국 후회합니다. 인생에 큰 손실이 생깁니다.
하나님의지하고 하나님께 메달리는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삶의 방식입니다.
You shall fear the LORD your God; you shall serve Him, and cling to Him, and you shall swear by His name.
Dt 10:20.
이 말씀은 11:22, 13:4 에도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22:5, 23:8, 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히싁야를 칭찬하실 때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2 Ki 18:5–6.
우리 성경은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라고 번역했는데, NASB에서는 cling to라고 메달리다라고 원문의 뜻을 잘 살렸습니다. esv에서도 hold fast라고 꽉 붙잡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긴 여행입니다.
문제는 메달리는 것에 끈기를 가지고 메달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이 끈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얻게된 것에도 하나님께만 메달리는 이 끈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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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메달리다 라는 단어는 드바크(דבק)
esv에서는 hold fast, nasb에서는 clint to 라고 번역했습니다.
성도들의 삶의 방식이 주님께만 메달리는 것이 삶의 방식입니다.
돈의 의지하지도 않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인권이 좋아지는 이유는 부당한 권위에 맞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에게 메달리지 않고 주님에게만 메달리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이 절실할 때 무엇을 합니까?
자신의 궁리에 메달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메달리십시오.
그 것이 성도들의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