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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읍소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리

창세기에서 요셉은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부대에 넣었다.

야곱의 아들들은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라고 말하고

요셉의 부하는"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잔은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베냐민에게서 나온다.

 

다시 요셉에게 끌려간 형제들은 요셉이 어릴적 꾸었던 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Ge 37:7."

유다의 말을 들어보면 야곱 가족의 모든 사람들을 종으로 표현하고

요셉을 주인으로 부르고 있다.

 

현행범으로 몰려 체포된 형제들은 이제 아무런 변명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베냐민은 그들의 말대로 요셉의 노예가되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때 아버지 야곱에게 맹세를 하고 베냐민을 데려온 유다가 나서서 읍소한다.

 

아버지의 목숨과 막내의 목숨이 연결되어 있어, 막내가 돌아가지 못하면

아버지는 죽습니다. 

내가 어찌 아버지를 죽게 할 수 있습니까?

부디 나를 종으로 있게하고, 베냐민을 돌려보내 소서하며 말한다.

이렇게 말한 유다의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셨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우리를 두고 하나님께 이와 같이 논리로 말씀을 올렸다.

내가 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벌을 받을 터이니, 이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창세기에는 유다의 이런 자기를 부인하고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이

고통을 대신 감당하겠다는 모습에 유다는 마음이 녹아내려고

감정의 댐이 무너져 내린다.

 

 

창세기 속에 죄로 인해 종된 우리를 대신해서 그 죄값을 치르고,

사람들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을 단순한 이야기로 풀기보다 전체 성경을 한가지 

맥을 가진  이야기로 보고 해석해야한다.

어떤 부분을 그런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부분을그렇게 하지 말아야할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