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은 상호관계에서 자율성이라는 중요한 심리적 욕구를 침해함으로써 둘 사이의 관계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는데, 그 결과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는 부정적인 심리상태와 행동을 하게 된다. 의심,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질투, 외로움과 불안정감, 과민성 등이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집착은 평생의 영향을 미치기도한다.
야곱은 어릴적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집착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집착은 그의 평생
대상을 달리하며 따라다닌다.
너희가 그 사람 앞에 섰을 때,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그 사람이 너희의 다른 형제와 벤야민을 보내 주기를 바란다. 자식을 잃어야 한다면 나로서는 잃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Ge 43:14.
야곱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상황에서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사람이 된다.
야곱은 라헬에 대한 집착이 있었고, 그 집착은 요셉에 이어지고, 요셉을 잃고 난후
베냐민에게 배가 되어 집착을 하게 된다.
식량이 모두 떨어지기까지, 야곱은 그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없었다.
마침내, 가져온 모든 식량이 떨어지고, 모두가 굶어죽을 위기에 이르렀을 때에야
야곱은 마침내 그 집착을 포기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게 된 상황 속에서 그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 때 그는 라헬에 대한 집착, 요셉에 대한 집착, 베냐민에 대한 집착에서 놓임을 받게 된다.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방해가 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집착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는 다말의 폭행사건 이후 벧엘로 돌아가 하나님의 의지하고 살았고,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라헬에서부터 뿌리 깊에 내려온 베냐민의 집착을 포기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게 된다.
아브라함의 자손의 집착이 있어 하나님은 자식을 요구했고,
이삭은 부자집 외아들로 자라 집착같은 것을 모르며 살았다.
야곱은 자신이 한날에 태어났지만, 큰아들이라고 편애하는 아버지 밑에서
결핍을 느끼며 살았다.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가 오면 늘 만져주었다.
이삭은 아버지가 사냥 요리를 좋아해서, 사냥꾼이 되었고 아버지가 이방 여인을 싫어해서
이스마엘의 딸인 6촌과 결혼했다.
그런 아버지의 애정 경쟁에서 에서는 늘 승자였고, 야곱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일에 패자였다.
그래서 그는 장자권이 있으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는 의지할 곳 없는 낯선 땅에서 만난 이쁜 라헬과의 사랑을 평생 집착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심에는 그 집착이 하나님 보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 보다 우선순위에 있었다.
야곱은
"그 사람이 너희의 다른 형제와 벤야민을 보내 주기를 바란다" 라고 말한다.
지금 이집트에 갇혀 있는 자식은 그냥 다른 형제라고 말하고 벤야민은 벤야민이라고 지칭한다.
야곱에게 벤야민을 제외한 모든 자식들을 그냥 one of them 일 뿐이었다.
또한 모든 가족들이 그 것을 너무 잘알고 있었다.
야곱의 집착은 일을 힘들게 만들고, 가족들도 힘들게 했다.
야곱의 집착으로 시므온은 몇달을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우리 삶 가운데서도 우리의 집착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힘들게 하고,
이웃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가?
우리의 집착 때문에 하나님의지하는 것을 못하고,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집착은 때로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한다.
빨리 깨닫고, 빨리 내려 놓는 자신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바로에게 고백하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자신과 이웃을 힘들게 하지 않는 길이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Ge 47:9."
험악한 세월은 히브리어로 라아는 일반적으로 나쁜이란 뜻이데, 권위있는 사전에는 이 구절에 대해 불운한 이라는 뜻으로 적었습니다.
이런 집착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의 믿을 만한 인도자가 되심을 믿고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내어드리는 데서 해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최선이 아니고,
결국 자신을 힘들게 하는 길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뜻에 맞추어,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Mic 6:8.
우리가 하는 일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늘 살펴보아야합니다.
주의 일을 하는 것도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인지, 혹시 집착이 아닌지?
내가 무엇에 열심을 내는 것도 그 동기가 주님으로 부터 인지? 아니면 자신의 집착인지
마음을 살펴야합니다.
자신의 마음 가장 중요한 곳에 자신이 앉아 있는 것이 바로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 것을 내려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곳에 강한 자아 집착이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실 때 우리의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