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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세어지는 일들

아브라함은 조급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온지 10년이 지났지만 자녀는 결국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미 자신의 나이가 84세가 넘었습니다.

 

아내 사라도 자식이 급했습니다.

당시에는 무자녀가 여인들의 수치일뿐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라도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계산과 방식대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시기를 고집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과정의 한걸음 걸음이 모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인내함 없이, 믿음없이,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기 보다, 자신의 편법으로 이루어 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자작 프로젝트 때문에 작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자신의 종이었던 하갈이 사라를 무시합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임신한 하갈을 쫓아냅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구속 사역을 이루는 자손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지 약속의 자손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의 86세부터 99세까지 13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록할만한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기록할만한일 이 없는 시간이어씃ㅂ니다.

 

결국 이스마엘의 출산은 적자 이삭이 태어났을 골치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으시고,

우리가 잘못 판단해서 일을 진행시키셔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법과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 시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착각으로 진행시키신 일들을 없애시거나

잘못으로 책망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자녀를 얻고자 하는 그 동기가 악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충분히 믿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장수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도 응답해서

이스마엘로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인자함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제너러스 하신 분이십니다.

 

 

결국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사라가 이스마엘을 쫓고자합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 집에서 살 수 없는 자녀가 되고 맙니다.

사라가 여종의 아들이 적자인 이삭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며

이스마엘을 쫓아버립니다.

 

아브라함의 기다림의 인내가 부족한 것으로 인해 탄생한 이스마엘 프로젝트는 결국 투자는 많이 했는데 성과가 별로 없고, 중간에 멈춰지는 프로젝트가 되고 맙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의미있었던 일, 쓸데 없었던 일이 보입니다.

일들을 처음부터 하는 것이 나았는데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일들이 정말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의미가 있었다는 일들이 있습니다.

좋은 삶이란, 의미 있는 일들이 많고, 의미 없는 일들이 적은 삶이겠지요.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분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모든 방법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들과같은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비전을 보고, 자신이 나서서 자손을 만드는 일에 힘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분별하는 영적인 지혜가 있어야합니다.

 

로마서 12장을 보겠습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며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삶은, 노력할 수록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방향을 잘못잡은 배는 속도를 내면 낼수록 항해를 망치게 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한 사역이라고,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하는 것이 사역 잘하는 것입니다.

고전 3장을 봅시다.

 

 

사후에 우리의 노력이 불에 타서 없어지는 공력이 있고, 타지 않고 남는 공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무엇인가를 남기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지만

무엇이 남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들, 인정하시는 수고, 인정하시는 열매, 인정하시는 시간 만 남습니다.

그렇지 않은 일들, 수고, 시간들은 고생만하고, 남는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인생의 골치거리를 만들 뿐이빈다.

 

반석위에 지은 사람, 모래 위에 집지은 사람의 수고와 비용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늘과 차이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둘이 주를 위해 수고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양은 주님의 뜻대로 사람들이라고 수고가 칭송을 받지만.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않고, 자기 열심과 속에 감춰진 스스로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기 욕심, 자기 만족, 자기 야망을 추구하는 일들은 주님께서 전혀 인정하지 않으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런 일들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는 일들입니다.

살다보면 꼭 죄를 짓는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 말씀에 벗어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도 하지만, 그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때문이고,

기본적으로는 그런 일들은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욕심이 동가 되어 이룬 것들입니다.

욕심은 자신의 욕심을 따른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올 따른 것이 아닙니다.

 

보통 자기 욕심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잘 못 봅니다.

더 정확히는 자기 욕구가 하나님 말씀의 비중과 우선순위 보다 앞선 것이빈다.

이런 수고들이 인정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생에 방해가 되고 헛된 소모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일을 자신의 욕심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인지 구분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기도로 하는 습관이 우리를 분별하게 합니다.

결국 영적 분별력은 말씀과 기도에서 나옵니다

일에 열심을 내면 수록 우리는 더욱 기도에 힘써야합니다.

자칫하면 자기 욕심과 자기 의욕과 자기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져

엉뚱한 항로를 택함으로 일하면 일할수록 자신의 인생을 갊아먹고,

결과적으로 파괴시키는 일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이 일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일인가? 인정해 주시는 방법인가? 

내가 주께서 주신 율레를 어기며 일을 하고 있지는 않나

말씀과 기도로 분별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