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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정리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

<서론>

16세기 종교개헉의 구호는 "ad fonte"(근원으로-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였다. 교회가 길을 잃었을 때 초대교회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구호였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면이 우리의 표준이 되는가하는 질문은 간단하지 않다. 

이 책은 1세기 중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지중해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생겨나던 때, 그 공동체들의 사회적 삶의 실제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이다. 근거가 약한 논지들을 견강부회한 듯한 글도 군데군데 보이지만 근거가 빈약한대로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소개하는 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만하다..

 

현대인들이 초대교회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이유는

1. 현대 상황과 동일시 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노예라는 말이 현대인에게 주는 어감과 당시의 사람들에게 주는 어감은 많이 다를 수 있다. 현대는 목화 재배하든 아프리카 노예나 머슴 살이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당시의 노예는 우리의 상상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2. 관념에 갇히 역사 

1세기 교회는 변형되지 않은 원래의 순수한 한가지 관념으로의 신학이 존재했던, 순수한 복음으로 모인 그 자체라고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당시 교회들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하면 그 복음을 전해들은 회중이 각 지역의 형편과 문화에 따라 이런 저런 모양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교회를 형성해 갔다. 각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 삶의 정황이 교회의 직제, 문화, 예배 형태에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교리적 표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성경에 기록된 신학적 저술은 1세기를 살아간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실제적 환경에 근거하고 있다. 

순수한 신학을 찾으려 한다고 해도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그 상황에 대한 나름의 그림이 배경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대게 1세기 상황 보다는 21세기 우리의 상황이나, 역사시간에 들어봤던 상상이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두란노 서원이라기 보다 두란노 공장이라는 해석이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자료들은 두란노 서원보다는 공장이라든가 학원이라든가 하는 가정들에 더 가까운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며 초대교회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교정해 준다.

 

3. 정치사와 사회사

초기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반인들의 살아왔던 사회에 대한 문화사가 훨씬 더 중요하지만, 우리는 역사 공부의 경험으로 정치사 위주로 그 사회를 이해하려는 편향을 가지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는 정치사와 함께 사회사적 관점으로 확대한 시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대 구미 사회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의 의미아 중요성은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이해가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받은 선물의 의미를 밝혀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은혜에 대한 이해, 심지어 기독교 구원론 전체에 대한 이해에도 도전을 줄 수 있다.

 

4. 자료 문제

기존의 고대사 연구는 대체로 엘리트들이 남긴 문헌으로 중심으로연구되어 왔다. 상위 1퍼센트 이상의 엘리트들이 남긴 귀족들의 기록이 바울의 편지를 받아 읽던 데살로니가의 교인들과 같은 세계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을까?

19세기 말 이집트 지역의 파피루스들이 대량 발견되면서 고대 지중해 세계에 대한 이해가 크게 교정된 것 처럼, 엘리트 문서는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크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바울이 선교하던 도시의 광장과 장터같은 실제 생활의 환경을 이해하려는 연구에 대한 글들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잘 다듬어진듯하지만, 문맥이 향하는 초점이 다초점이거나 결론이 모호하게 끝나는 글이 많다는 약점이 있지만 글의 소재로 다루고 있는 역사적 증거들이 성경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7장>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 카이사르 암살자는 미상의 인물이고 브루투스는 세익스피어 소설에서 카이사르를 암살한다.

어쨌던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요 지극히 로마적인 도시이자 로마의 샘플로 자랑거리가 된 도시이다.

따라서 로마 퇴역군인을 위한 로마식 도시라서 유대인의인도고 많지 않았고 유대인의 회당을 찾을 수 없었다.

 

<8장>

 

그레코-로만 시대에 퀴리오스는 노예가 주인을 부르는 말이기도 했지만, 이미 조선시대의 나으리 처럼 누구든 높여 부르는 말이 되었다.

부활한 예수님을 못 알아본 마리아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부른 호칭이 퀴리오스이다. 이 책은 이런 부분에 헛점이 많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가장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노예나 그 집의 딸 혹은 아내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노예나 자녀에게는 "네 집" 이라는 경제단위의 결정이 없다.  집은 아버지의 집일 뿐이었다.

 

간수는 왜 자결하려 했을까 라고 물어 놓고 답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신의 분노가 자기에게 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경 본문은 죄수들이 도망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대답이 석연치 않다.

 

<9장>

사도행전은 로마의 체제를 존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체제위에 계신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체제라면 언제든 흔들 수 있는 하나님을 함께 증언하고 있다.

 

이 저자의 글의 약점은 한 지점을 향해 글을 전개해 나가는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떤 지점을 향해가는듯 하다가 중간에 초점을 잃거나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는 일이 잦다. 사실 이 분의 설교도 그런 면이 많다.

 

1세기에 경기장에서 여성들은 남성과 함께 앉을 수 없었다. 여성들은 좋지 않은 자리로 가서 앉아야 했으나, 최상층은 남녀 분리의 규율에서 벗어나 있었다. 만찬이나 축제에서도 남녀가 식사하는 공간은 분리되어 있었다.

 

바울의 교회들이 대체로 그리스 문화권에 위치했던 것을 감안하면, 공동식사에 정기적으로 함께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여자가 공적인 자리에서 수건을 써야하는 것도 그리스의 풍습이다. 처음부터 교회의 풍습이 아니었다. 로마 여인드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도 밖에 나서는 예가 많았다.  고린도는 그리스 전통에서 세워진 로마의 식민지 도시였다.

바울이 수건을 쓰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은 보수적인 그리스 문화 편에 선 결과라 해석할 수 있다. 

 

그레코-로만 vs 히브리적 이라는 구도와는 다른 '그리스 문화 vs 로마 문화'라는 구도가 신약성경 본문의 배후에 작용하고 있다.

 

"여성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느 말은 오히려 당시 교회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리더십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고, 파격적 평등을 실천하는 일이 사회적 충격을 주었고 어린 공동체에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네카는 전쟁으로인한 것이든 부모의 가난으로인한 것이든 노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운이 나쁜 결과로 보았다. 로마인은 노예를 인정하는 국가의 법이 자연법과 상충된다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많은 대목에서 그리스적 가치와 로마적 가치가 차이가 있었다.

 

로마 사회에서 한 개인의 지위는 노예인가 자유인인가로 판단할 수 없고, 노예이더라도 누구에게 속했는가가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게 해 준다.

 

<10장>

호머의 시들이 중등 교육 과정의 교과서로 쓰였다. 이 단계를 성공적으로마친 이들은 호머의 일리아드 상당 부분을 일고 인용하는 것으로 문화인으로 인정받았다.

 

바울의 글과 필론의 글을 비교해 보면 바울이 중등교육을 마쳤지만 고등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친 지식인에는 못 미치는 정도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어느 정도 수사학적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고 엘리트나 전문 연설가 수준은 아니었다.

 

선포되는 내용이 청중을 지적으로 형성하기도 한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대단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어도 놀리적으로 정교한 언술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플라토은 문자가 좀더 생동감 있게 기억력을 퇴보 시킬 것이라 햇다.

 

고대인들은 글로 표현되지 않는 지식의 가능성에 대해 열린 태도를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개방성이 지식인들이 공식 교육을 받지 않았던 예수님을 예배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11장>

그리스 문화에서는 가까운 가족 친구 친족 같은 사회 계급 안에서만 인사와 우정의 표시로 입맞춤을 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배참여자들에게 거룩한 입 맞춤이라는 예전을 통해 새로운 질서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설득해 내었다.

초대교회 예배는 성경 본문을 읽고 그것을 풀어 강해하는 언어전달이 중심이었다.  예배의 교육적 기능이 중요한 특징이었다. 

롬 12장의 영적 예배가 합리적 이라는 말이라고 적어 놓고 그 것이 인간의 고유한 지적 능력을 뜻하기 때문에 합리적인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근거의 설명이 너무 빈약하다. 초대 교회 예배에서는 예배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였다. 

 

디다케를 볼 때 현대 예배의 마지막 축도는 바울 당시부터 행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