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은 당대를 위한 것
There was no end of all the people, all of whom he led. Yet those who come later will not rejoice in him. Surely this also is vanity and a striving after wind.(Ec 4:16)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Ec 4:13–16.
사람의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나 업적, 흔적 등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오랜 후세에 까지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를 원하고 또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바램을 이루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을 하고 그 희망을 품은 사람은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죽고 나서는 알 길이 없다.
우리 인생이 끝이 나면, 모든 것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흔적도 없어질 것임을 알고 인생을 계획하는 것이 지혜다.
정치적 업적, 선교적 업적, 예술적 업적도 자신이 만족을 누릴 수 있는 한계는 당대 뿐이다.
죽고 난 이후 이 것이 없적이 될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다.
성경번역은 오래 갈 업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것도 당대다.
머지 않아 개정작업이 시작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게임은 더 수명이 짧다.
당대의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한다.
후대의 일에 비중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후대의 일에 영향을 미치는 업적도 많지만, 후대에 업적이 될지 않될지는 나의 소관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