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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

시인님 2021. 5. 27. 13:11

야곱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라반의 작은 재산이 크게 불어나게 하심으로 

야곱의 재산도 늘어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야곱의 재산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야곱은 파단-아람에 살아도 이제 부족할 것이 없다.

2명의 아내와 2명의 소실과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이 있었다.

그 외 종들도 많았다.

성경에는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자신이 라반 보다 더 부자가 되니, 그 전에는 사이가 괜찮았던 라반의 안색이 변한 것이다.

이제 노골적으로  화를 내거나 적대감을 더러내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네 조상 땅 친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야곱은 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고향 땅으로 가려는 준비를 했다.

아내들도 야곱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자고 이야기했다.

 

야곱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 까지는 어려움 들이 있었다.

라반으로 부터 도망가야 하고, 또 라반이 쫓아올 때 그와 담판을 지어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 에서가 자신을 위협하면 어떻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야곱은 얍복   개울을 건너기 전에 에서 소식을 들었다.

야곱을 맞으러 400명을 모아 온다는 소식이었다.

자신을 환영할 것이라면 2-3명이면 될 것을 400명이나 모아 온다는 것은 자신을 치려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발걸음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냥 에서를 피해서 적당한 곳을 찾아서 살아도 되지만

야곱에게는 분명한 방향이 있었다. 그 것은 벧엘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정말 꼭 이 일을 해야되는 이유가 되는 그 말씀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꼭 우리가 일을 해야하는 이유의 중심에 있습니까?

 

야곱은 벧엘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발걸음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먼저 가축을 여러 떼로 나누고, 종들을 보냈다.

그리고 두 소실을 보냈다.

그리고 레아와 그 자녀들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떤 라헬과 그 자녀들을 보냈다.

이 배치에서 야곱은 자신의 속마음이 다 드러나 보이게되었다.

그리고 다 얍복 나루를 건너 보내고 자신은 건너지 않고 밤을 보낸다.

두려웠다.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라헬이 아니었다.

라헬 보다 더 뒤에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의 가장 중심에 자신 자신이 들어 앉아 있은 것을 발견한다.

이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와 씨름, 레슬링을 한다.

하나님의 천사는 하나님을 대신해 씨름을 했는데, 야곱을 이기지 못하니까

야곱의 고관절을 쳐서 탈골을 시켰다.

이제까지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온 야곱이 이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몸이 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Ge 28:15."

 

하지만 야곱은 그 축복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야곱의 고관절을 탈골시키면서 자신을 믿고 살아온 야곱이 자신을 믿지 못하게 하고는, 다시 축복해 주셨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면서 살아야겠기에,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 라고 떼를 부린다.

 

다음 날 아침 야곱은 가족들의 뒤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보호하려는 마음을 바꾸어 

저는 다리로 자신이 가족들 앞에 가고 , 가족은 자신의 뒤에 서는 행렬로 에서를 맞이한다.

 

라반과 살 때는 자신만의 꼼수 노하우로 재산을 불려왔지만,

그는 자신이 종들고 함께 보내었던  모든 양떼를 에서에게 선물로 줘 버린다.

벧엘로 돌아가는 야곱의 의지는 이제 자신의 꼼수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축복, 즉 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에서가 동행한 사람 가운데 몇을 너를 호위하기 위해 남겨 두겠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야곱은 이름은 뒤통수 였는데, 씨름 하고 탈골 뒤 이후 하나님이 씨름할 것이다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이유는 이제까지는 야곱이 하나님과 사람과 씨름을 했지만, 이제는 너 야곱이 씨름할 것이 아니고, 하님께서 씨름할 것이다 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29절에서 천사는 너는 이제까지 완료형 "샤리타(שָׂרִ֧יתָ)" 너는 씨름해 왔다 하나님과 사람들과.

이전에 그는 뒤통수 치는 방법으로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씨름 할 것이다(יִשְׂרָאֵ֑ל) 이스라엘.

야곱의 문제를 하나님과 씨름하시겠다. 너는 하나님의 씨름하시도록 하고 네가 나서지 마라.

야곱은 고관절 탈골로 씨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씨름하시는 축복을 바라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는 문제 앞에서 우리의 꼼수를 쓰면서 문제를 풀어나갑니까? 아니면

문제를 두고 사람이 하나님이 씨름하시도록 하며 살아갑니까?

천사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씨름하여 우세했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과도 씨름하고 또 사람과도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이 씨름할 것이다 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제 그 이름대로 자신이 나서서 씨름하지 않고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께서 씨름하시도록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점점 인생길에서 자신의 역할을 줄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디나 폭행 사건, 이후 벧엘로 올라갈 때도 이방신을 버리라고 명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주위 족속들을 두렵게 해서 무사히 지나가게 했습니다.

 

문제 앞에 하나님과 씨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문제와 씨름해 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씨름하시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