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의 의미
야곱의 두 아내들은 출산 문제를 두고 인생을 건다.
아이가 있냐, 없냐로 인생을 걸고, 많냐 적냐로 인생을 걸었다.
그러나 아이를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라헬에게 야곱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데,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겠느냐". 이 말 또한 진리이다.
야곱의 아내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이 더 가지기를 경쟁한다.
시기하고 부러워하고 자신의 몸종을 남편에게 주는 탐탁치 않은 무리수까지 두며 경쟁에서 이기려한다.
먼저는 여인으로서 중요한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려하고, 둘째는 자녀의 수를 통한 가정 내에서의 지위를 얻으려한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이 태어날 때마다.
야곱의 아내는 그 한 명, 한 명에 절절한 사연과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한 체험으로 그 이름 짓는다.
12명 모두의 이름들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이름을 짓는데,
그 이름들은 모두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하나님의 이러이러한 돌보심으로 내가 아들을 얻었다는 신앙고백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통해서
그 어머니들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고백과 이해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이름들은 그들의 어머니의 경험과 신앙 고백이에
하나님을 맛보아 안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하나님이 모습이다.
레아는 남편이 라헬만 사랑하는 것으로 삶이 고난스러웠다.
하필 이쁜 동생과 한 남편을 가지는 것으로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차라리 처녀라면 시집 가겠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다른 삶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런 레아의 고난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이 계셨다.
1) "보다"라는 뜻의 "라하" 라는 말과 "고난을" 이라는 뜻의 "베아니" 라는 단어로 르우벤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고백이다.
둘째를 낳고는, 자신이 미움 받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2) "듣다"라는 말 "샤마아"라는 단어로 "시므온" 이라 이름지었다.
셋째를 낳고는 이제 내 남편이 나에게 붙을 것이라 해서
3) "붙다 Attach" 라는 뜻의 "이라붸" 를 넣어서 "레위"라 이름 짓는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돌아와 딱 붙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아내도 처녀 때 남편을 달라는 오랜 기도 끝에 레위를 낳을 때의 기적 처럼,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남편이 딱 붙게 만들어 주셨다.
넷째를 낳고는 라헬은 자신의 아픔과 미움받는 일과 외로움이 다 씻겨나가고 또 아들을 하나 더 주심으로 내가 이제는 나의 아픔을 다 씻고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아픔이 씻겨 나가거나 아픔에서 벗어난 것을 경험한 사람은 그로 인해 찬양이 저절로 나온다.
4)"찬양하다" "요데" 라는 단어로 "예후다" 라고 이름 짓습니다.
한 때 집중적으로 사랑을 받던 라헬은 큰 상실 감에 빠졌다.
사람은 원래 없는 것 보다, 있다가 없는 것에 더 큰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로인해 야곱에게 바가지를 긁기 시작한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안 그러면 죽겠다.
라헬에게는 언니는 자식은 연속으로 낳아 풍성해졌고, 남편마저
빼앗긴 이 상황이 목숨을 버리고 싶은 상황이었다.
야곱은 성을 내며 말합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데,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는가 라고 합니다.
라헬은 하나님께서 임신 못하게 한 것이라는 말에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지는 듯했다.
이제는 자신이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아들을 낳아
이 상황을 바꾸고자한다.
자신의 시종 빌하를 주고, 아들을 낳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얻었다.
라헬은 아들을 낳자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푸시는 판결을 내리셨다.
5)"판결"이라는 단어 "다난" 이라는 단어로 "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라헬에게 나타난 하나님, 라헬의 눈에 시각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은 아니지만
라헬의 삶에서 분명하게 그 손길을 드러내신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억울한 일을 당하시는 분이 있는가? 사람은 이 세상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에 있는 죄성은 힘없는 사람의 억울한 희생으로 몰아 넣습니다. 하나님은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판결을 내려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라헬은 자신의 잘못이 하나도 없었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남편의 사랑도, 식구들의 인정도, 자신의 미래 마져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런 라헬에게 하나님은 라헬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빌하가 또 아들을 낳아서 라헬의 자식이 되자.
라헬은 언니와 큰 경쟁 문자적으로 신의 레슬링, 즉 온 천하를 건 레슬링을 해서 내가 우세해졌다라고 고백합니다. 레슬링하다 낲툴레, 닢탈레티 라는 단어로낲탈리 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씨름하는데 힘이 빠져 있는 우리에게 힘을 주사 씨름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이유인지 레아는 임신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레아도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보고자 자신의 시녀 실바를 야곱의 소실로 줍니다.
레아도 또 아들을 얻어 행운을 얻었다 해서 행운이라는 뜻의 갇 그 단어 그대로 갓이라 이름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운과 부을 주시는분이십니다.
실라가 또 아이를 낳았습니다.
레아는 "행복한 사람이다". "해피!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말했습니다.
행복하다 라는 단어 오쉐리, 이세리 단어를 맞추어서 아쉐르 라고 이름지었습니다.
행복은 자신이 행복해서 행복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행복도 행복의 한 종류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행복도 주시는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라헬과 레아의 고백을 통해 그들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모습을 보았습니다.
라헬은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무자녀의 수치를 안고 살아왔다.
자신의 몸에서 난 아이가 한명도 없을 때 경쟁자인 언니 레아는 6명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수치와 자괴감으로 괴로워 했다. 그런 그녀를 하나님은 돌아보시고 아이를 주셨다.
히브리어에서 아삽은 치우다 라는 뜻으로 이름을 요셉이라 지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를 치우시는 하나님이시다.